2년전 신인상을 받아 라노베 작가가 된 스기이 히카루는 괴물 같은 작가들이 많다는 업계 소식을 어깨너머 들은터였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보니 진짜 괴물들이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옆집에 사는 농땡이 전문 작가 하가쿠레 이즈나는 여우 모양의 영물 이즈나(飯綱)였고, 집 주인 칸나즈키 츠바사는 집 지키는 꼬맹이 자시키와라시(座敷童子)였습니다. 그외에도 언데드인 구울과 유혹의 화신 인큐버스, 흡혈귀, 음양사까지... 항상 마감에 목 매달고 있는 히카루의 하루는 이 요괴들 때문에 편안하게 지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안녕 피아노 소나타, 하느님의 메모장으로 유명한 스기이 히카루(杉井光)의 자전적인 라노베 바케라노를 읽어보았습니다. 바케모노(괴물)와 라이트노벨의 축약형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라노베 작가들의 일상을 살짝 비튼 작품이며 실제 작가들을 이름만 바꿔 등장시켜 화제를 모았습니다. 작가 이름만으로 작품과 매칭이 안되서 한 번 찾아봤는데, 히로인격인 하가쿠레 이즈나는 늑대와 향신료로 잘 알려진 하세쿠라 이즈나였고(더구나 성전환까지 시켰습니다.), 로리 캐릭터인 칸나즈키 츠바사는 그와 그녀의 소환마법을 쓴 고즈키 츠카사였습니다. 섹시한 언데드 카자히메 시키는 킬x러브의 카자미 메구루, 종마 인큐버스로 등장하는 엠씨는 니노미야군에게 애도를로 유명한 스즈키 다이스케를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다혈질 흡혈귀 우노 남작은 D 크랙커즈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아자노 코우헤이였고, 요조숙녀 음양사 마유즈미 아리사는 이누카미의 작가 아리스와 마미즈였습니다. 친분이 있는 작가들은 다 갔다 쓴 느낌이네요. 더구나 주인공은 실명까지 사용한 작가 본인이었습니다. OTL

기본적으로 스기이 히카루는 대사를 맛깔나게 잘 칩니다. 한 캐릭터의 독백과 바로 이어지는 대사를 능숙하게 묶어 독자들을 웃게 만들면서 전개 속도와 감정의 높낮이를 기타줄 처럼 팽팽하게 유지해 지루할 틈을 안줍니다. 그리고 적당할 때 탕, 튕겨줘서 가슴을 찡하게 만들기도 하죠. 별거 없는 라노베 작가들의 루즈한 일상에서 시원한 박하양이 나는 것은 전적으로 스기이 히카루의 팝콘 같은 필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의 편안함은 누구나 묘사할 수 있지만 그걸 눈에 띄는 재미로 포장할 수 있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죠. 여기까지가 바케라노 1권과 작가인 스기이 히카루의 장점.
반면 이 소설은 불면 날아갈 정도로 가볍습니다. 애초에 묵직한 감동이 나올 소재도 아니었지만 책을 덮으면 뭘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남는게 없습니다.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할 수도 있겠지만 단편이 아닌 이상 다음 권에 대한 기대 정도는 남겨줬어야 하는데 철저하게 캐릭터성에 의존해 이야기를 끌고 나가다보니 다음에도 이렇게 웃고 떠들다가 살짝 진지해 지겠구나 하는 진부함이 그런 '기대'를 대신해버립니다. 알고보니 인간과 요괴가 전쟁 중이었더라 하는 파격적인(?) 설정이 등장하는 않는 이상 이런 진부함은 계속될 것 같았습니다. 저자가 아무리 톡톡 튀는 묘사에 능숙하다고 해도 알맹이 없는 전개를 필력으로 가리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게 바케라노 1권과 작가인 스기이 히카루의 단점.
개인적으론 서너권으로 마무리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가벼운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매체 자체에 관심이 있다면 꽤나 유쾌한 소설이 되겠지만 뭔가 마음 속에 담아둘 수 있는 읽을거리로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덧글
주인공인 작가 본인이라....이것이 말로만 듣던 대리 만족?!
작가분 소원 아마도 요거였나봅니다.(미소녀 지옥.)
물론 주인공의 미숙 작가로서의...
...라노벨 지망생들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인감.[...]
뭐, 그렇다고 내용이 재미없는 건 아니니 다음 권도 기대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