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전 일이다. 신참 디렉터 딱지를 뗀지 얼마 되지 않아 중박 정도 되보이는 시나리오를 받았다. 적당히 꼴리는 원화만 붙이면 되겠다는 생각에 유통사랑 계약하고 그림 실력이 괜찮다는 노인이 일하는 작업실에 들렸다. 원화에 제작비를 많이 할애하기 힘들어 흥정한 요량으로 얼마에 그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컷당 단가를 토니보다 더 비싸게 부르는 것이었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잘해봤자 중박인 시나리오인데..." 했더니,
"원화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제작비 모자라면 음성 빼든지." 아리스도 아닌데 음성 없이 어떻게 파냐고 반문해도 노인은 고집불통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꼴리게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포토샵을 열더니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카즈에 여사처럼 광속으로 선을 긋는 것 같더니 한참을 지나도 포즈만 계속 다듬고 있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쌀 정도인데 옆에 AV까지 틀어놓고 참고해가며 포즈를 계속 바꾸는 것이었다. 채색팀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상반기 결산 때문에 발매일을 빠듯하게 잡아놔 안그래도 시간이 없는데 원화까지 이러니 갑갑함을 넘어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고치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그린 사람이 꼴려야 하는 사람도 꼴리지. 무조건 벗긴다고 그년x3가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디렉터가 꼴린다는데 무얼 더 고친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발매일 연기 못한다구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사람 시키구려. 난 안 그리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아이3 꼴 낼 수도 없고, 다운로드 판매로 돌리면 발매일은 얼추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고쳐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같은 포즈만 계속 나온다니까. 설땐 제대로 세워줘야지, 한번만 싸게 만들면 쓰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타블렛 위에 펜을 던져놓고 태연스럽게 니코동에 올린다고 작업 장면을 녹화하고 있는게 아닌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USB에 담아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그림들이었다.
패키지 안만든다고 유통사에 욕까지 먹고 돌아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그림을 그리면 스텝들이 좋아할리가 없다. 디렉터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토니보다 더 비싸게 부른다. 이바닥 예절도 모르는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하게 벤치에 앉아 여름 코미케에 출품할 동인지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 때, 그 옆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하지 않겠는가스럽고, 부드러운 눈매와 힌 수염에 나도 모르게 뺨까지 붉어졌다. 더 있으면 안될 것 같아 서둘러 자리를 떴다.
회사에 와서 원화를 내놨더니, 채색팀이 쌀 것 같다고 난리다. 전에 그리던 작가 것보다 훨씬 더 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를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채색팀 설명을 들어보니, 너무 벗고 있으면 식상한데다 다양한 살색으로 덧칠하기 힘들고, 너무 입고 있으며 화면이 난잡하고 덜 꼴린다는 것이다. 색 지정도 채색하기에 딱 적당하고 클로즈업 앵글을 잘 잡아 모자이크를 많이 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한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예전에는 16컬러만으로도 사정없이 꼴리게 만드는 원화들이 많았다. 눈이 피로한 원색을 많이 쓰지 않아 딸치는데 힘든 유저들의 눈까지 배려했고 적절하게 스크롤되는 전신 이미지로 색다르게 흥분할 수 있도록 해줬다. 하지만 요즘 원화는 한 장 그려놓고 확대 축소로 많이들 우려먹는다. 같은 얼굴에 머리색만 바꿔 캐릭터 숫자 늘리기에 급급하다. 자기네 기준에 맞게 꼴리라고 유저들에게 강요하는 꼴이다.
애니메이션 연출만 해도 그렇다. 예전에는 셀 작업 하듯이 한컷 한컷 정성스럽게 그리고 꼴리는데 부족하지 않을 프레임으로 유저들을 즐겁해 해주었는데, 요즘은 가슴만 조금 떨려도 첨단 애니메이션 효과라고 우긴다. 왠만한 움직임은 좌표만 지정해줘도 프로그램이 다 알아서 해주는데 예전보다 발매일은 더 못지켜 유저들을 실망시킨다. 예전 회사들은 매출에 목숨 걸더라고 게임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유저들은 복상사시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했다. 요즘은 적당한 퀄리티에 특전만 잔뜩 끼워 한몫 잡겠다고 달려드는 회사들이 대부분이다.
이 원화는 유저들의 정액을 고갈시키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렸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아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원화를 그린담 하던 말이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꼴리는 원화를 그릴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 정식으로 사과하고 숲의 요정 DVD라도 선물할 요량으로 발매일에 맞춰 사무실을 찾았다. 하지만 노인은 동인지로 대박을 쳐서 이미 은퇴한 후였다. 나는 그 노인이 작업했던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사과하면서 분위기 봐서 고백할 생각이었는데 안타까웠다. 사무실 앞 노인이 앉았던 벤치를 바라보다 앉아보니 맞은편 사무실 창이 여직원 탈의실이었다. 노인은 그때 저걸 보고 있었구나...
오랬만에 야근을 안하고 일찍 들어갔더니 아들놈 방문이 잠겨있었다. 방에서 흘러나오는 BGM을 들으니 오래전에 출시한 노인의 작품이었다. 쓰레기통에 휴지가 가득한 것 보니 아들놈도 어지간히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당황하면서 바지를 올리고 나오는 아들을 보니 문득 허름한 작업실에서 원화를 그리던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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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게 원화를 좋아하다 보니 이렇게 저질스런 패러디밖에 못쓰겠어요. :)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잘해봤자 중박인 시나리오인데..." 했더니,
"원화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제작비 모자라면 음성 빼든지." 아리스도 아닌데 음성 없이 어떻게 파냐고 반문해도 노인은 고집불통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꼴리게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포토샵을 열더니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카즈에 여사처럼 광속으로 선을 긋는 것 같더니 한참을 지나도 포즈만 계속 다듬고 있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쌀 정도인데 옆에 AV까지 틀어놓고 참고해가며 포즈를 계속 바꾸는 것이었다. 채색팀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상반기 결산 때문에 발매일을 빠듯하게 잡아놔 안그래도 시간이 없는데 원화까지 이러니 갑갑함을 넘어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고치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그린 사람이 꼴려야 하는 사람도 꼴리지. 무조건 벗긴다고 그년x3가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디렉터가 꼴린다는데 무얼 더 고친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발매일 연기 못한다구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사람 시키구려. 난 안 그리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아이3 꼴 낼 수도 없고, 다운로드 판매로 돌리면 발매일은 얼추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고쳐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같은 포즈만 계속 나온다니까. 설땐 제대로 세워줘야지, 한번만 싸게 만들면 쓰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타블렛 위에 펜을 던져놓고 태연스럽게 니코동에 올린다고 작업 장면을 녹화하고 있는게 아닌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USB에 담아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그림들이었다.
패키지 안만든다고 유통사에 욕까지 먹고 돌아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그림을 그리면 스텝들이 좋아할리가 없다. 디렉터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토니보다 더 비싸게 부른다. 이바닥 예절도 모르는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하게 벤치에 앉아 여름 코미케에 출품할 동인지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 때, 그 옆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하지 않겠는가스럽고, 부드러운 눈매와 힌 수염에 나도 모르게 뺨까지 붉어졌다. 더 있으면 안될 것 같아 서둘러 자리를 떴다.
회사에 와서 원화를 내놨더니, 채색팀이 쌀 것 같다고 난리다. 전에 그리던 작가 것보다 훨씬 더 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를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채색팀 설명을 들어보니, 너무 벗고 있으면 식상한데다 다양한 살색으로 덧칠하기 힘들고, 너무 입고 있으며 화면이 난잡하고 덜 꼴린다는 것이다. 색 지정도 채색하기에 딱 적당하고 클로즈업 앵글을 잘 잡아 모자이크를 많이 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한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예전에는 16컬러만으로도 사정없이 꼴리게 만드는 원화들이 많았다. 눈이 피로한 원색을 많이 쓰지 않아 딸치는데 힘든 유저들의 눈까지 배려했고 적절하게 스크롤되는 전신 이미지로 색다르게 흥분할 수 있도록 해줬다. 하지만 요즘 원화는 한 장 그려놓고 확대 축소로 많이들 우려먹는다. 같은 얼굴에 머리색만 바꿔 캐릭터 숫자 늘리기에 급급하다. 자기네 기준에 맞게 꼴리라고 유저들에게 강요하는 꼴이다.
애니메이션 연출만 해도 그렇다. 예전에는 셀 작업 하듯이 한컷 한컷 정성스럽게 그리고 꼴리는데 부족하지 않을 프레임으로 유저들을 즐겁해 해주었는데, 요즘은 가슴만 조금 떨려도 첨단 애니메이션 효과라고 우긴다. 왠만한 움직임은 좌표만 지정해줘도 프로그램이 다 알아서 해주는데 예전보다 발매일은 더 못지켜 유저들을 실망시킨다. 예전 회사들은 매출에 목숨 걸더라고 게임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유저들은 복상사시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했다. 요즘은 적당한 퀄리티에 특전만 잔뜩 끼워 한몫 잡겠다고 달려드는 회사들이 대부분이다.
이 원화는 유저들의 정액을 고갈시키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렸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아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원화를 그린담 하던 말이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꼴리는 원화를 그릴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 정식으로 사과하고 숲의 요정 DVD라도 선물할 요량으로 발매일에 맞춰 사무실을 찾았다. 하지만 노인은 동인지로 대박을 쳐서 이미 은퇴한 후였다. 나는 그 노인이 작업했던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사과하면서 분위기 봐서 고백할 생각이었는데 안타까웠다. 사무실 앞 노인이 앉았던 벤치를 바라보다 앉아보니 맞은편 사무실 창이 여직원 탈의실이었다. 노인은 그때 저걸 보고 있었구나...
오랬만에 야근을 안하고 일찍 들어갔더니 아들놈 방문이 잠겨있었다. 방에서 흘러나오는 BGM을 들으니 오래전에 출시한 노인의 작품이었다. 쓰레기통에 휴지가 가득한 것 보니 아들놈도 어지간히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당황하면서 바지를 올리고 나오는 아들을 보니 문득 허름한 작업실에서 원화를 그리던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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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게 원화를 좋아하다 보니 이렇게 저질스런 패러디밖에 못쓰겠어요. :)
태그 : 패러디



덧글
ㅋㅋ
그나저나 '방망이 깎던 노인의 원작자님'이신 윤오영님은
자신의 작품이 이런식으로 패러디될 줄 모르셨겠죠...
딜도 깎던 노인에 이어서 원화 그리던 노인이라니...
마지막 문장에서 뒤집어졌습니다.
아리수님 에로게 만들던 노인도 재미있었습니다.
아니 노인네가 그년x3라니
대단하십니다~~!!
있는지 몰랐습니다.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방망이깎는 노인은 이래저래 패러디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명작은 명작인가봅니다(...).
알카노이드님에 이어 노인의 이름이 핫포비 진이길 기대하는 두번째사람입니다.
명언이네요 ㅜㅜ
"글쎄, 재촉을 하면 같은 포즈만 계속 나온다니까. 계속 세워줘야지, 플레이하는 동안 딸 한 번만 치나."
...였는데 마지막에 조금 바꿨습니다. ^^
(방바닥을 구르고 있음)
수위 때문에 원작에 누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주옥같은 명언들이 심금을 울립니다.
웃길려고 쓴 글이니 목적 달성했네요.
가슴에 확 와닿는 글이군요...(응?)
설정해야 하는데.
노인에게 꼭 사과를 드리고 싶지 말입니다.
원작은 정말 명문인 것 같습니다.
등짝 좀 보여주세요!
요즘은 빠진건가요..?
그나저나.. 주인공의 아들은 미성년자같은데요..;
한 번 죽 찾아봐야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어 웃어주셔서 주인장도 기쁩니다.
마음을 사로 잡는 환상의 소재와 조화!!!!!
올해의 문학 대상을 모아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디서 이런 패러디를 생각하셨데!?
안그래도 얼마전에 고시촌 패러디한 방망이노인 이야기를 후배랑 했는데 에로게로 터질 줄이야...
저는 국어나 문학에 성적이 좋은 편이었기에 이 수필을 교과서에서 읽어본 걸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원문을 생각하면서 읽으니 정말이지 실소를 금할 수 없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지원 1737~1805 이 쓴 허생전과 더불어 인터넷 패러디가 여럿 되더니 급기야
다크 월드에서도(?) 패러디되는 구냥
허생전 에로 버전은 아직 없는 것 같은데, 너무 길어 쓰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바이퍼 rise 16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었는데 후속편인 GTB는 작화나 동세 퀄리티가 은근히 전작보다 떨어져서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그래도 아키라는 무겐에도 나오고 나름 살아남았군요